심리상담칼럼

[상담칼럼]칭찬에 과도하게 예민한 사람들

공진수 센터장 2015. 2. 20.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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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기에 우등생과 모범생으로 자란 청년이 있었지요. 그런데 이 분은 군대를 다녀오고 난 다음부터 무기력증에 빠져서 사회적 적응을 잘 하지 못하는 경우였답니다. 그래서 심리상담을 진행해 보니, 이 분의 경우에는 칭찬에 과도하게 예민한 사람이었죠. 무슨 이야기냐 하면 칭찬을 받고 자란 것은 좋았지만, 이것이 나중에는 칭찬 없이는 그 무엇도 시도하지 않으려는 모습으로 변질이 되어 있더라는 것이죠.


한동안 베스트셀러였던 책이 있어죠.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라는 책. 이 책을 읽고 많은 분들은 칭찬의 힘에 대해서 느꼈을 것입니다. 그래서 자녀들에게 칭찬을 많이 해주려고 노력한다는 부모도 자주 만나 보았죠.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는 칭찬의 힘도 먹히지 않더라고 토로하는 부모들이 나타나기 시작하더군요. 그래서 그 이유에 대해서 나름대로 연구를 해 보기도 했지요. 그러다가 찾은 답 중에는 이런 주장이 있었지요. 바로 아들러가 주장한 이론인데요, 그의 이론을 다시금 각색해 보면, 칭찬이라고 하는 것이 바로 갑과 을의 관계 속에서 생긴다는 것이죠. 즉, 강한 자나 우월한 자가 약한 자나 열등한 자에게 할 수 있는 것이 칭찬이라는 것이죠. 그래서 당장은 칭찬이 좋은 역할을 하는 것 같지만, 문제는 갑과 을의 관계가 약해지는 시기가 오면, 칭찬의 힘은 그 역할을 못하게 되고, 최악에는 칭찬 없이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고 하네요.


실제로 사춘기에 접어든 청소년들을 만나보면, 칭찬을 칭찬으로 받지 않더군요. 그럼 그들은 그것을 무엇으로 느낄까요? 그것은 바로 부모의 기대와 욕심이 칭찬이라는 가면으로 변질되었다고 믿더군요. 예를 들어서 부모가 말썽꾸러기인 자녀에게 '너는 착한 아이잖아!' - 이런 칭찬이 가장 수준이 낮은 칭찬이지만 - 라고 말을 건네면, 아이들은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기도 하지요. '아, 나의 행동에 대해서 불만스러운데, 착한 아이라고 말하면서 그렇게 되라고 강요하는구나. 그런데 내가 여기에서 이것을 받아 들이면 부모에게 지는 것이니, 나는 더욱 내 스타일대로 해야지!'하고는 부모의 바램과는 다르게 행동을 하지요. 그래서 이런 청소년과 부모를 만나보면, 부모는 이렇게 주장하기도 한답니다. '전, 칭찬도 많이 해 주는데, 아이가 저런 것 보면 정말 미칠 것 같아요. 보기만 해도 미워요!' '칭찬에도 소홀하지 않았는데 저런 모습을 보면 모든 잘못의 원인이 저 녀석인 것 같아요' 등등.


그런데 이런 부모들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모르는 경우가 많더군요. 사춘기 전까지의 자녀들은 부모와 힘겨루기를 하지 않기 때문에 갑을관계가 잘 유지되지만, 청소년기에 접어들면 갑을관계가 깨어지기 때문에 칭찬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칭찬의 힘이 발휘되지 않는 것이고요, 또 칭찬의 수준 중에서도 가장 낮은 수준의 칭찬을 사용하니 칭찬의 효과를 보지 못하는 것이죠. 그런데도 이러한 칭찬이나마 받기 위해서 목숨을 거는 자녀들이 있다는 것은 더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답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사람들은 나중에 칭찬이 사라지게 되면 매우 불안해 하고, 우울해 하며, 분노하기도 하지요. 그래서 칭찬을 받을 만한 행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꾸중을 받을 만한 행동을 해서라도 부모의 관심을 얻으려고 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요.


위에 적었던 청년도 그런 경우였답니다. 워낙 우등생에 모범생이었으니 부모에게 얼마나 많은 관심과 사랑 그리고 기대와 칭찬을 받지 않았을까요? 그런데 군대를 가 보니 이러한 환경과는 너무나도 다르더라는 것이죠. 고생을 해도 알아주는 사람도 없고, 오히려 문제가 잘못되면 꾸중을 받다 보니, 나중에는 군대가 자신을 변질시켰다는 합리화를 가지고 나오게 되었고, 사회와 사람을 바라보는 시각까지도 부정적이고 적대적인 자세를 가지게 되었죠.


자 그럼 자녀들을 키우는데 칭찬 대신에 무엇을 해야 할까요? 아니 칭찬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후자의 건부터 먼저 이야기를 하면, 칭찬은 인격과 성격에 대한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행위에 집중해야 한답니다. 너는 착하다느니, 너는 좋은 아이라느니, 너는 옳바른 아이라느니 하는 것은 칭찬이 아닙니다. 긍정적 비판일 수 있지요. 이상하다고요. 그럼 너는 나쁘다느니, 너는 이상한 아이라느니, 너는 틀린 아이라느니 하는 것은 비판이라고 이해되고 수용되시나요? 그렇다면 착하다, 좋다, 옳바르다도 역시 긍정적 비판이 아닐까요? 따라서 어느 누구도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비판에 대해서는 예민하답니다. 더군다나 위에 언급한 것은 인격과 성격에 대한 것이죠. 그래서 행위에 집중하라는 것이죠. 너가 열심히 숙제를 하는 것 보니 엄마 기분이 좋은데, 너가 동생과 사이좋게 놀아주니 아빠 맘에 기쁨이 생기는데 등과 같이 행위에 집중하는 것이야 말고, 칭찬 중에 칭찬이라고 할 수 있고, 칭찬을 받는 사람도 역시 칭찬을 칭찬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죠.


그럼 칭찬 대신에 무엇을 사용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까요? 그것은 바로 아들러가 주장한 용기라고 할 수 있지요. 많은 사람들은 칭찬 받기를 원하지만 용기가 없어서 행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지요. 예를 들어서 아이들은 시험에서 높은 점수를 받아서 칭찬을 받고 싶지만, 혹시 높은 점수가 나오지 않으면 어쩌나 하고 걱정을 하다가 실제로 성적이 떨어지는 아이들도 있지요. 용기가 없는 경우라고 할 수 있는데요, 이럴 때는 '너는 할 수 있어!' '너는 하기만 하면 잘 하는 아이야!'와 같은 말은 별 위력이 없지요. 왜냐하면 부담감만 주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용기를 주기 위해서는 '열심히 해 보거라. 그리고 나오는 결과에 대해서는 그냥 수용하자'라고 말해 준다면, 아이들은 용기를 낼 것이고 무엇인가 도전하는 것에 대해서도 두려움이 조금 사라질 것입니다.


능력은 있으나 무기력한 청년 이야기부터 여기까지 오게 되었네요. 칭찬은 좋은 것이지만 칭찬에만 목숨 걸게 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칭찬보다는 용기를 주는 부모가 되어 보고요, 동료가 되어 보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칭찬을 해야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연구해 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