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내담자를 상대하다 보면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증상이 어떻든지 간에 그렇다.
그 중의 하나는 감정표현에 대한 것이다.
어린이부터 성인에 이르기까지 상담센터를 찾아오는 내담자 중에는 감정표현을 잘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감정표현은 나쁜 것이라는 인지적 오류를 가진 내담자가 있는 반면에, 나의 감정표현을 듣는 사람이 받아주지 않으면 어떻하나 하는 두려움과 불안에 사로잡힌 자들도 있다.
물론 이러한 인지적 오류와 두려움 및 불안을 갖게 된 데에는 그동안의 삶 속에서 체득하고 학습되면서 구조화된 인지의 틀이 존재한다.
또한 무의식 속에 저장되어 버린 삶 속에서의 좌절과 상처의 트라우마가 꿈틀되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감정의 존재 이유를 알지 못하고 감정표현보다는 감정대로 행동을 함으로써 내담자 스스로와 타인에게 본의 아니게 상처를 주고 억압을 주고 좌절감을 안겨주는 등 다양한 현상이 벌어지면서 삶에 대한 피로도가 높아진다.
우리는 집단 무의식적으로 유교적 전통에 젖어 있다.
물론 시대가 변하고 사회가 발전하면서 이러한 집단 무의식은 점차 변화가 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동안의 우리의 집단 무의식은 무시할 수 없다.
그렇다 보니 아이가 조금만 산만해도 억압을 하거나 얌전하게 만들고 싶어하는 욕구가 부모를 비롯한 어른들에게는 있으며, 이러한 욕구가 집단 무의식으로 남아 있다.
감정표현 역시 그렇다.
남자 아이가 잘 울면 '남자가....' 하면서 억압하고 여자 아이가 잘 울면 '여자가 왜 징징대냐?' 하면서 상처를 준다.
그러다 보니 우리들은 감정표현에 대해서 긍정적 수용보다는 부정적 수용이 많은 문화권에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누군가가 '오늘 예쁘시네요?' 라고 칭찬을 하면 '감사합니다' 혹은 '고맙습니다' 라는 반응보다는 '아니에요' 라는 부정을 하는 경우도 자주 본다.
물론 '저 이쁜 것 이제 아셨어요!' 라며 나르시시즘에 빠진 사람들도 있지만.
어쨌든 부정적 반응에 대해서 예전에는 겸손하다는 평가를 받았을지 모르지만, 이것이 자주 학습되고 습관이 되어 버리면 자존감에 상처가 생길 수 있다.
왜냐하면 인간은 밥을 먹으며 성장하지만 말을 먹고 들으면서 성숙해지는데 부정적 수용과 반응을 자주 하다 보면 자아상 역시 부정적이 될 수 있고 그러한 부정적 자아상 속에서는 자존감이 낮아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감정은 왜 존재할까?
그것은 바로 표현하라고 존재한다.
따라서 아이들이든 청소년들이든 심지어 성인들이든 감정을 표현할 때에는 판단을 하기에 앞서서 수용해 주는 문화가 필요하다.
물론 법적, 윤리적, 도덕적 등등으로 수용이 불가능한 것에 대해서는 제한을 두어야 하지만 말이다.
오늘도 감정표현이 어려운 수많은 아빠들이 있으며, 감정표현이 어려운 수많은 엄마들이 있다.
아울러 자녀들 역시 감정표현이 서툰 부모 아래에서 자란다면 감정표현이 어려울 수 있다.
감정표현에 대한 부정적 인지의 틀을 극복하고 감정표현에 대해서 부정적 수용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을 극복하고 더욱 행복한 삶을 사시길 바란다.
단, 감정대로 행동하는 것에 대해서는 잘 조절을 하면서 말이다.
070 4079 68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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