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상담칼럼

[교육칼럼]동화의 위험성

공진수 센터장 2014. 4. 14. 09:24

- 공진수 센터장 소개 -

​건국대학교 미래지식교육원 아동교육아카데미 아동심리상담사/놀이치료사 지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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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벌어진 계모들의 사건과 재판으로 인하여 전국의 계모 그리고 계부들의 심정이 불편하다고 한다. 물을 흐린 것은 한 두 마리의 미끄라지인데 재혼하여 계모 혹은 계부라는 이유만으로 가슴앓이를 하는 분들이 많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왜 계모나 계부에 대해서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거나 선입견을 갖게 되었느냐에 대해서 나는 앞선 칼럼 중에 동화나 드라마를 잠시 언급한 적이 있다. 오늘은 이 중에서 동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동화란 다양한 면에서 좋은 면들이 많다. 교육적인 면이나 아동발달 과정 중 심리적, 정서적인 면에서 더욱 그렇다. 그런데 이렇게 좋은 동화들도 모든 면이 좋다고는 볼 수 없다. 왜냐하면 동화 역시 작가가 독자들에게 주고 싶은 메세지를 담고 있게 마련이고, 이러한 메세지는 본의든 본의가 아니든 한쪽 면을 과도하게 부각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독자들도 동화를 통해서 얻는 교훈을 획일적으로 수용할 때 문제가 발생한다.
대표적인 예를 들어보자.
개미와 베짱이, 토끼와 거북이 등에서 우리가 배우는 교훈은 무엇일까? 많은 분들은 개미의 근면함, 거북이의 성실함에 방점을 찍고 베짱이와 토끼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방점을 찍는 경우가 많다.
그럼 꼭 그럴까?
베짱이와 같은 삶은 나쁘거나 배척되어야 하며, 토끼와 같은 행동은 비난 받고 수용되면 안되는 것일까? 여기에서 문제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부모가 아이들에게 이러한 획일적 관점을 주입시킬 때, 아이들은 무비판적으로 당장 부모의 해석을 따르지만 나중에 삶의 과정 속에서 잠시 토끼가 되거나 베짱이가 될 때 그들의 갈등을 어떻게 해 주어야 할까?
잠시 심리적으로 들어가서 프로이드에 의하면 인간의 성격구조는 원초아, 자아 그리고 초자아로 나누었다. 그런데 이 중에서 초자아는 부모가 먼저 키워준다. 그리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스스로가 초자아를 통한 자아정체성과 가치관 등을 형성하게 된다. 그런데 여기에서 부모가 어떻게 아이의 초자아를 키워주느냐에 따라서 아이는 행복할수도 있고 자존감이 높을수도 있지만, 왜곡되게 키우거나 비민주적으로 키울 경우 아이의 행복감과 자존감은 낮아질 수 있다.
사실 동화라는 것이 초자아를 건드리는 부분이다. 위의 예처럼 개미의 근면성만을 강조할 경우 아이는 잠시 휴식 취하는 것에 대해서도 수용하지 못하고 스스로를 게으른 사람, 나태한 사람이라고 부정적인 인식을 하거나 휴식을 취하면서도 불안을 극복하지 못하고 일중독적 사고에 빠질 수 있다. 그렇지 않아도 우리 사회는 치열한 경쟁사회인데 개미만을 강조한다면 그 위험성은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열심히 일하는 만큼 휴식도 필요하고, 일에 몰입하는 만큼 베짱이와 같은 창의적인 활동도 필요한 것인데, 베짱이는 나쁜 모델의 대명사로 개미는 좋은 모델의 대명사로만 해석을 한다면 매우 위험한 해석이라고 생각된다.
이와 관련해서 우리는 계모가 나오는 동화들을 많이 알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계모하면 부정적이고 계자녀들을 학대하거나 친자녀만을 끼고 도는 듯한 인상을 우리는 동화를 통해서 배우지 않았나 생각해 보자. 그리고 지금과 같은 사건이 일어나면 계부모들은 가슴을 졸여야 하는 상황이 너무 안타깝다. 이미 보도를 통해서 알겠지만 친부모에 의한 학대와 폭력이 더 비일비재함에도 말이다. 심지어는 친부에 의한 성폭행도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나는 이런 관점에서 아이들에게 동화를 읽어주되 동화의 해석은 아이에게 맡기라고 주장하고 싶다. 부모가 일방적이고 주입식 해석을 통해서 왜곡된 이미지와 관점을 심겨주지 않기 위해서는 동화는 읽어주되 그 수용에 대해서는 아이에게 맡겨야 한다는 것이다. 더 심하게 말한다면 아이들에게 동화를 읽어주지 말기를 바란다. 기성세대의 주입식 메세지가 가득 담긴 동화는 아이의 정서발달에 도움보다는 왜곡된 세계상을 줄 수 있는 위험이 더 많기 때문이다.
그럼 아이들에게 무엇을 해 주어야 할까?
모든 이론들이 다 완벽하지는 않기 때문에 조심스럽기는 하지만 위 사진의 루돌프 슈타이너의 인지학에 근거한 이야기를 잠시 적으면서 이 글을 마치고자 한다. 루돌프 슈타이너는 인지학을 근거로 하여 발도르프 학교를 만든 장본인이다. 그는 ​21세 전까지의 아동 청소년들에게 무엇을 해 주어야 할지에 대해서 나름의 철학을 적었는데 그것을 간단하게 적어보면 이렇다.
 
0세에서 7세 아이들까지는 의지발달에 집중하며, 손과 몸의 사용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고 했다. 나는 이것을 협응에 신경을 써야 한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협응이 잘 되는 아이들이 뇌 발달에도 좋고 나중에 학습을 할 경우에도 성취도가 높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동화를 통해서 일방적으로 무엇인가를 주입한다는 것은 생각해 볼 사항이다.
 
7세에서 14세까지의 아동들에게는 감정발달에 집중하며, 특히 예술적 교육을 통한 감정발달이 매우 좋다고 한다. 이러한 예는 내가 슈투트가르트의 발도르프 본교를 갔을 때 관찰한 내용과 비교해 보았을 때 많이 와 닿았던 내용이다. 아침 등교시간에 보니 무슨 예술 초중고등학교처럼 악기를 자연스럽게 들고 매고 오던 학생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비록 전공자가 되지 않더라도 예술에 중점을 둔 교육의 모습 속에서 아동들이 건강하게 자라는 모습을 보여주는 좋은 예라고 생각한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나라에서는 미술, 음악 그리고 체육시간 등이 전무하거나 한 학년에서 모두 해 버리고 끝내버리는 교육환경이 너무나 아쉽다.​
14세에서 21세까지는 사고발달에 집중하며,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면을 훈련시키게 된다. 우리나라로 따지만 중고등학교 시절이라고 볼 수 있는데, 선행학습에 빠져 있는 우리 사회를 슈타이너의 교육철학에 비추어 ​볼 때 순리가 아닌 역리로 교육환경을 만들어가는 우리나라의 모습이 아쉽기 그지 없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아이들의 창의력이 키우고 사회성을 키우며 성취감을 높이고 무엇인가를 깨닫게 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손과 몸을 많이 사용하는 협응작업을 많이 해 보며, 아이의 느낌을 스스로 표현하게 하는 방법을 택해보라. 동화책을 붙잡고 주입식으로 교훈을 강요하지 않으며 책을 보는 것은 괴로운 일, 힘든 일이라는​ 인식을 심겨주지 않는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 그리고 불필요한 선입견과 고정관념을 억압적으로 심지 않는 길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