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상담칼럼

[상담칼럼]아빠 놀이 학교

공진수 센터장 2014. 6. 21. 12:33

- 공진수 센터장 소개 - 

건국대학교 미래지식교육원 아동교육아카데미 아동심리상담사/놀이치료사 지도교수 

부부심리상담사

음악심리상담전문가 (음악치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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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치료센터에 나오는 아동 그리고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질문을 해 보았다. '혹시 일주엘 동안에 아빠와 어느 정도 시간을 나누니?' 많은 대답은 이렇다. '우리 아빠 바쁜데요!' '잘 안 놀아줘요....' '아빠와 노는 것이 어색해요!' '아빠는 컴퓨터만 해요!' '아빠는 집에 오시면 주무시기만 해요....' '우리 아빠는 핸드폰으로 게임만 하는데....' '아빠와 놀기 싫어요. 왜냐하면 짜증을 많이 내시거든요....' 이런 답을 늘어 놓으면 20여개는 더 나올 듯하다. 어찌 되었든 자녀들과 놀이를 통해서 잘 놀아주거나 소통하는 아빠들이 의외로 적다는 것을 많이 느낀다.


그러다 보니 자녀들은 점점 자라면서 아빠와의 소통에 어색해 하고, 아빠의 관심을 간섭으로 이해한다. 여기에 아빠는 무서운 존재 혹은 통제하는 존재로 인식이 되어서, 아빠가 무슨 말을 한다고 할 때에는 잔소리가 나올 것이라는 선입견을 갖는 경우가 잦다. 그러니 자녀들이 성장하면 성장할수록, 가까이 하기에는 너무 먼 당신이 되어 버리는 것이 오늘날의 아빠 모습이 아닌가 생각된다. 본의 아니게 가정 내에서 왕따가 되어버리는 아버지들.....


이러한 것은 심리치료센터에 동행하는 부모의 비율만 보더라도 그대로 알 수 있다. 어머니가 동행하는 경우가 90퍼센트, 아버지가 동행하는 경우는 10퍼센트 정도 된다. 따라서 심리상담 진행 중에 어머니에게 아버지의 방문을 부탁을 해도, 스케즐 잡는 것에서부터 심리치료센터까지 방문하는 아버지의 비율은 더욱 더 떨어진다. 좋게 말해서는 양육에 대해서 아내에게 다 맡긴 것 같은데, 다르게 말하면 매우 무심하거나 방임하거나 혹은 회피하는 경우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자녀가 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되면, 어느날 갑자기 아버지가 자녀의 양육과 교육의 전면에 나서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무엇을 전공할지, 어디로 진학할지 등등에 대해서 간섭이 시작되는 것이다. 자녀들은 어색하기도 하고 이상하게도 느껴진다. 언제부터 관심이 있었다고 저러시나 하면서 아버지에 대한 저항감을 드러내기도 한다.


이러한 것을 조금이나마 예방해 보고자 주변의 있는 어떤 초등학교에 협약을 맺고, 아빠 놀이 교실을 5주간 진행하고 있다. 매주 토요일 황금같은 시간에 자녀와 아빠와 함께 하는 시간이다. 아이들은 아빠와 동행하는 것에 매우 신난 모습이다. 그런데 아빠들은 매우 어색한 순간들이다. 아빠들끼리도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하면서 조금씩 안면을 익힌다. 이런 면에서 엄마들과 너무나 다른 모습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주 한 주 진행되는 동안, 자녀와도 친해지고, 함께 하는 다른 아빠들과 자녀들과도 친해지면서 조금씩 마음의 벽을 낮춘다.


결국 자녀들은 아빠와 엄청 놀고 싶었다는 욕구가 드러나는 순간이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아빠들의 질문도 받고, 답변도 드리면서 양육에 대해서 그리고 소통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아빠들이 매우 좋아한다. 돌아보니 지금의 많은 아빠들이 자신과 비슷한 아버지들과 함께 살았기에, 자녀들과 소통하고 자녀들과 놀아주는 것에 대해서 배우지 못했기에, 오늘날에도 자녀들과 놀아주고 함께 하는 것에 소홀했다는 것을 느끼고, 기회가 되면 자녀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더 가져보겠다고 느낀다. 비록 모험적인 프로젝트였지만, 프로젝트의 목표에 다가가는 순간이어서 기쁘다.


오늘도 땀이 나도록 아이들과 뛰어놀고 아빠들과 함께 했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아이들과 아빠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함께 놀아주는 아빠, 함께 시간을 공유하는 아빠에 대해서 아이들은 사랑하고 존경한다. 그리고 아빠와 같은 부모가 되겠다는 느낌까지 가질 수 있고 배울 수 있는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