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도상담칼럼

[부부연구]외도치료 - 위로

공진수 센터장 2015. 12. 7. 09:00



www.동행심리치료센터.kr  

전화문의 & 강의의뢰 : 070 4079 6875 / 070 4098 6875

 

여러분이 배우자 외도로 인하여 상처를 받았다면, 여러분은 위로가 필요한 사람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위로라는 것을 잘 모르는 경우가 있다. 대표적인 경우가 위로와 동정을 구분하지 못하는 경우이다. 아울러 행위 배우자의 경우에는 무엇이 위로인지 몰라서 혼란스럽다고 한다. 그래서 오늘은 여기에 대해서 몇 자 적는다. 일단은 3가지 정도를 적어 본다.


첫째, 위로란 함께 있는 것이다. 함께 있지 않더라도 동참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친구들의 부모가 돌아가셨을 때 우리가 문상을 이유는 위로를 해주러 가는 대표적인 경우일 것이다. 슬픔에 잠긴 사람 곁에 있거나 함께 하는 것은 위로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배우자 외도 이후에도 이러한 것이 매우 필요하다. 그런데 실제 상황을 보면 그렇지 못한 경우를 자주 겪는다.


행위 배우자는 피해 배우자가 두려워서 다가가지 못하고, 피해 배우자는 행위 배우자를 밖으로 밀어낸다. 심한 경우에는 "나쁜 사람"이나 "더러운 사람"이니 하는 모욕감을 주면서 밀어낸다. 그러니 부부는 함께 하기가 너무 어려워진다. 그러니 위로가 될 수 있는 상황이 사라지게 된다. 따라서 행위 배우자는 피해 배우자에게 다가가는 것에 대해서 두려움을 낮추어야 하며, 피해 배우자는 행위 배우자를 밖으로 밀어내어서는 안된다. 특히 정서적으로 밀어내는 것은 행위 배우자가 다가가기에는 너무나 높은 벽이 되어 버린다. 그 벽 때문에 다가가지 못한 행위 배우자를 다시금 비난하는 것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다.


둘째, 위로한 상처받은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우리는 상처를 받았을 때, 상처받은 자의 이야기만 잘 들어주어도 위로가 되어서 치유가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많은 행위 배우자들은 피해 배우자의 이야기 듣기를 싫어하거나 거부한다. 왜냐하면 입만 열만 자신을 비난하고 비판할 것이라는 선입견 혹은 고정관념과 함께, 반론과 방어를 하고자 하는 방어기제 때문에 피해 배우자와 대화를 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이다.


그런데 잘 들어 준다는 것은 반박하고 방어하는 모습이 아닌 자세를 갖는 것이다. 왜냐하면 듣는 것은 귀로만 듣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세와 태도에서도 들어주는 모습을 보여야 하고, 감정에 있어서도 잘 조절을 하면서 들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부부들을 보면 위로를 하지도 그리고 위로를 받지도 못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피해 배우자를 위로하고 싶다면, 그 혹은 그녀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어라.


혹 피해 배우자의 이야기가 과하거나 사실도 아닌 것을 사실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이러한 것은 그 즉시 반박하고 방어를 할 것이 아니라, 피해 배우자의 감정이 어느 정도 안정화가 되었을 때 다시금 논의를 해도 늦지 않다. 잘 들어주는 자세와 태도만 보여도 피해 배우자는 위로를 받기 때문에 감정적으로 안정을 찾게 되고, 좀 더 냉정해지며 주관적인 부분에서 객관적인 부분으로 문제를 접근하기 때문에, 오히려 대화와 소통에는 더 도움이 된다.


셋째, 적절한 스킨쉽을 하라.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모태회귀본능이 있다. 태어나고 난 후에는 다시금 돌아갈 수 없는 모태이지만, 모태에 있을 때에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항상 사모한다. 그래서 이러한 것을 대치하고자 포옹을 하는 것이고, 힘들 때 외로울 때 웅크리는 것이다. 그러한 자세가 바로 모태 속에 있었던 자세였기 때문에 그러는 것이다. 그러하니 비록 배우자 외도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자주 서로 포옹하고 스킨쉽을 하는 것은 매우 유익하다.


단 이러한 행위에 있어서 익숙하지 못한 부부나 피해 배우자가 거부하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다. 그렇다면 피해 배우자는 이러한 부분에 대해서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와 용기가 필요하다. 그런데 행위 배우자에 대해서 도덕적 우월감을 갖고 있거나 외도를 행하였으니 더러운 사람이라는 식의 신념을 가지게 되면, 부부간의 스킨쉽은 싶지 않게 될 것이고, 그 와중에서 결정권을 가진 사람은 피해 배우자일 가능성이 높으니, 피해 배우자가 위로 받기를 원한다면 부부간의 스킨쉽을 허용해 줄 수 있는 의지와 용기를 가져야 한다.


결국 이러한 방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방법을 회피하고 나서 행위 배우자를 통해서 위로 받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모순적인 상황이 아닐까? 더군다나 행위 배우자가 스킨쉽에 대해서 위로적 차원에서 접근함에도 불구하고 거부감을 표시한다면 행위 배우자는 매우 당황스럽거나 당혹스러울 것이다.


이 외에도 각 부부는 위로의 방법이 각자 있을 것이다. 그러나 위에서 언급한 것들만이라도 용기를 내어서 실시한다면, 부부관계는 좀 더 안정적으로 변할 것이고, 그 과정을 통해서 우리는 배우자 외도를 극복할 것이다. 배우자 외도를 각서를 쓰거나 약속만 한다고 해서 극복되는 것은 아니다. 위로를 주고 받으며 신뢰감을 다시 쌓는 가운데에서, 배우자 외도 사건 이전보다 더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삶을 살 때, 우리는 배우자 외도를 극복했다고 할 수 있다.


부디 작은 부분일지라도 알고만 있지 말고 직접 실생활에 적용해 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