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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우유를 데워서 마시는데 문득 옛 생각이 났다. 초등학교 입학 전후의 시간으로 생각이 된다. 우리 가족은 경기도의 작은 읍 소재지에 살았다. 그리고 출석하는 교회의 담임 목사님은 젖소를 몇 마리 키웠는데, 그 젖소들에서 나오는 우유를 그 읍내에서 신청하신 분들에게 배달해 주었다. 이러한 우유가 배달되던 집 중의 하나가 우리집이었다.
'아 꽤 사는 집이었구나?' 하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을지 모르나, 형제자매는 많고 가정경제는 풍요롭지 못한 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집도 우유를 받아서 마셨다. 그리고 우유가 배달되면 그것을 다시금 데워서 아버지만 마셨다. 그래서 그런지 지금도 그 우유향은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것 같다.
그 당시 콜라병에 배달되는 우유 한 병을 7남매가 모두 마시고 싶었지만, 유감스럽게도 그 우유는 아버지만 마시게 했다. 그리고 그렇게 아버지만 마시게 한 이유를 잘 몰랐는데, 몇 년 전 고인이 되신 아버지와 관련된 숨겨진 이야기를 듣고서야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아버지는 젊었을 당시 서울의 변화가에서 세탁소를 하셨다고 했다. 내가 태어나기 전의 일로 직원도 몇 명 두고 하실 정도로 괜찮았던 모양인데, 그 당시 야당에 정치자금을 주었다는 것 때문에 정치폭력배에게 잡혀가서 육체적으로 망신창이가 되시고 돌아와, 결국 경기도의 읍 소재지로 피신 아닌 피신을 하며 1년 넘게 그 후유증을 앓으셨던 모양이다.
다행히 몸은 서서히 추스려지고 그곳에서 양복점을 하셨는데, 9명의 식구가 겨우 살아갈 수 있는 입장은 되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당시 내가 태어났던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아버지의 건강에 대해서 어머니는 민감할 수 밖에 없었고, 그래서 몸에 좋다는 것은 되도록이면 다 해 드리려고 했던 것 같다. 8명 식구의 책임을 지셨으니 말이다. 이런 것 때문인지 어렸을 때 우리 집에서는 뱀도 고아서 마시는 것을 본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그리고 우유를 아버지만 마셨던 것도 이와 관련이 있는 듯하다.
그래서 그런지 나도 이제 50대를 접어들면서 아버지를 따라하는 것 같다. 우유를 마시면서도 그것을 살짝 데워서 마시는 경우가 많으니 말이다. 이런 것을 '무의식적'이라고 한다. 의식적으로 데워 마시는 것 같지만, 어렸을 때의 경험에 의한 무의식적 행위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오늘 나는 그 이유를 알게 된 것 같은데, 이러한 것을 '성찰' 또는 '통찰'이라고 한다.
이렇게 과거 삶의 궤적과 현재 삶과의 인과관계 혹은 상관관계를 분석하는 것을 '정신분석'이라고 하고, 이러한 방법론으로 상담을 하거나 치료하는 것을 '정신분석적 상담' 혹은 '정신분석적 치료'라고 한다. 사람들은 정신분석하며 뭔가 정신적으로 이상한 사람을 분석하는 것으로 오해하지만, 정신분석은 그런 것이 아니라 과거의 무엇인가가 현재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는 전제하에, 과거를 분석, 탐색하고, 현재의 관점에서 해석을 해 보는 것이다.
그런데 어떤 분들은 이러한 정신분석을 불편해 하거나 힘들어 한다. 자아가 약한 사람들이 그렇고, 과거의 삶에 대한 수치심이 있는 분들이 그렇다. 그렇다 보니 자기에 대한 성찰과 통찰이 없는 분들의 경우,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과거를 그대로 답습하는 자신의 모습을 제대로 보지 않으려고 한다.
예를 들어서 가정폭력이 난무하고, 술중독이 심했던 가정에서 자란 분들이, 나중에 커서 자신의 부모처럼 가정폭력과 술문제 등이 있을 경우, 정신분석이 필요할지도 모르는데, 부끄러운 과거, 수치스러운 과거에 대한 저항으로 정신분석적 상담이나 치료를 거부하는 경우도 많다.
그러다 보니 자신이 어렸을 때 부모의 모습을 그대로 답습하면서도, 그것을 고치거나 치료하지 않는 경우도 자주 본다. 아쉬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과거를 제대로 안다는 것은 동일한 실수와 실패를 방지하고, 보다 나은 삶을 살아갈 수 있는 동기와 계기가 될 수 있다.
'이미 지나 간 것' 하면서 과거를 무시할 것이 아니라, 과거 분석을 통해서 계속 이어갈 것은 이어가고, 즉시 중단해야 할 것은 중단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문제와 증상의 대물림을 방지하는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가정폭력, 자살, 이혼, 각종 중독, 외도 등등은 대물림이 잘 되는 경우이고, 이러한 것을 치료하거나 예방하기 위해서는 정신분석적인 상담이나 치료가 필요하다. 글을 적다 보니 나의 우유 이야기를 하다 너무 심각한 주제로 빠진 듯하다. 이 부분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서 줄인다.
끝으로 오늘부터 '심리상담사의 수필'이라고 해서 '심상수필' 코너를 만들었다. 심리상담사의 눈으로 보는 세상에 대한 글을 되도록이면 따뜻한 마음으로 적어보려고 한다. 많은 구독이 있기를 바라며, 내용이 좋았다면 공감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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